캠퍼스에서의 족구 2
그렇게 허망하게 1세트를 내준 L은 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내며 계속해서 이것저것 생각중이다. 누가 한두마디 이런저런 얘기를 걸어보지만 신경쓰이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단지 하나 세타를 원래대로 복귀시키고 다시해보자 그런생각뿐, 달리 떠오르는게 없다. 답답하고 막막하다. 동료들에게 잘해보자 화이팅 해보자 얘기는 하고 있지만 뭔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데 딱 이거다 하는게 없었다. 당연히 우승을 거머쥘것이라 생각했고 족구는 전기과가 제일 쎌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마지막 결승전에서 이런 상황을 맞닿드리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빨리 팀을 추스리고 상황판단을 해야 했다. 적의 약점과 우리의 강점을 살펴보자.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없다. 적의 약점은 무엇일까. 공격 수비 세타 모두들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판단해본다. 우선 수비들은 정말 탄탄했다. 예선전들에서 느껴본 개발수준이 아니었다. 정확한 리시브는 물론 공격수비까지 기본기가 좋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세타도 마찬가지 활발한 활동성과 볼 컨트롤 수준이 분명 어디 동호회에 가입되어 운동하는 사람같았다. 그리고 공격수..그랬다. 공격수의 수비가 약점으로 보인다. 화려한 외발 넘어차기의 소유자이지만 수비가 약한 공격수였다. 가끔 그쪽으로 가는 공격이 나오면 수비할때 왠지 뻣뻣한 느낌의 몸놀림으로 실점을 하곤 했다. 그래 공격수를 노리자 그렇게 생각하고 2세트 코트에 들어섰다.
맘속으로 공격수쪽의 공격을 다짐하고 L은 세타에게 그런말을 귓속으로 속삭였다
"높지 않아도 좋고 넘어가도 좋으니 네트에만 붙여줘"
"응~"
전기과 세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공격수 요청이니 으례 그렇게 대답했다.
양과의 시끄러운 응원단의 응원소리와 어디서 가져왔는지 북소리도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사람들 시선이 선수들과 공으로 집중되고 2세트가 시작되었다. 허망한 1세트를 내준 전기과 선수들은 뭐 이렇다할 분위기 반전의 작전지시도 없이 그냥 열심히 해보자 2세트는 잡아보자는 다짐들을 외치고 긴장된 마음으로 코트에 들어섰다. 기세를 완전히 잃었지만 새로운 세트는 좀 달라지겠지 하는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마음만은 벅차게 뛰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 반전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초반부터 왼발 넘어차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득점으로 쉽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여지는 전기과의 잦은 실수들,계속해서 당황스런 상황이다. 전기과 선수들은 모두 이대로 지는것인가 하는 패배감이 감돌았다. 선수들과 응원단까지도 이대로 끝날것 같은 무력감이 맴돌았다. 5대2상황에서 L이 작전타임을 일찍불렀다. 동료들을 모아놓고 L이 말했다.
"아직 멀었어. 분명 분위기 바뀌는 시점이 올거야, 그때 강하게 가면 된다. 기다리고 있어"
무슨근거로 그런말을 하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다른선수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줬다. 반면 말은 그렇게 해놓았지만 L도 마땅히 확실한 수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동료들을 붙잡아놓으려고 한말이었을 뿐이다. 단지 하나는 족구에서 분위기 바뀌는 시점은 분명히 있다고 경험했고 그기회를 잘살리면 역전이 가능할것이라 믿었으며 그런 기회가 오면 공격수쪽으로 공격해서 3점만 얻어보자 마음먹었을 뿐이다. 이런것이 제대로 실행될지 의문은 있었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이런저런 다른 생각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이것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작전타임이 끝나고 리시브를 받게되는 전기과. 첫번째 리시브가 잘올라왔고 세타 토스도 제대로 올라왔다. 그러나 L의 너무 왼쪽으로 올라와서 상대 왼발 공격수쪽을 노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토스였다. 그러나 네트에 붙여지기는 했다. L은 발이 올라가는 싯점에 이미 공격수쪽은 포기하고 페인트를 노렸다. 발바닥 회전 페인트였다. 잘 먹혀들었다. 5대3. 그리고 전기과가 평범하게 서브를 넣고 기계과가 리시브를 했지만 리시브가 좋지 않았다. 세타가 뒤에 까지 가서 간신히 토스했지만 공격하기에 어려운 토스라 그대로 전기과 쪽으로 넘겨지는 볼이 되었다. 그때 L의 마음속에 살짝 흥분이 일었다. 이것만 잘살리면 반전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속으로 그런 느낌을 가졌다. 리시브 잘되었고 이번 토스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격수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중앙에 네트에 가깝게 제대로 토스되었다. L은 이거다 싶었다. 강하게 공격수 쪽으로 안축으로 갈겨버렸다. 일명 내려찍는 에이퀵이 아니라 그냥 안축으로만 강하게 갈겨버리는 공격이었다. 평소 수비가 약하던 그 공격수는 머리를 대려고 몸을 구부리는 순간 공이 어깨에 벌써 와 터치되었다. 흥분되는 득점이었다. 그렇게 5대4가 되자 상대편도 약간 긴장되는듯 했다. 첫세트에서 너무 싱겁게 이겼고 자신들은 화려한 넘어차기의 공격수가 있으니 당연히 2세트도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다. 결승전이 너무 쉽게 생각되었고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싶었다. 2세트 5대4가 된지금 그들은 빨리 이기고 싶은데 좀 귀찮게 생겼네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우리가 이길것이다라는 생각과 우리의 넘어차기가 있으니 별다른 생각없이 게임에 집중했다. 거기서부턴 시소게임이 계속되었다. 한점 주고 한점먹고. 랠리도 많아지고 랠리가 많아지다 보니 점점 게임의 양상이 일방적인 게임에서 비슷비슷한 게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9대9동점상황. 이 팽팡함으로의 게임성격이 변한이상 기세를 올리는것은 전기과였다. 일방적으로 질것이라는 패배감에서 벗어나 그게 아니었구나 우리도 할수있구나 라는 마음자세의 변화가 일었고 반대로 기계과 선수들에게는 뭔가모르는 쫒기는 느낌이 들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중요한건 L의 몸이 풀리기 시작한것이었다. 1세트와 2세트 초반까지 거의 얼어있다 싶을정도로 평소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L은 이 페인트와 공격수쪽으로의 강한 공격의 성공은 몸의 놀림을 이제야 시작할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그야말로 L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일단 서브를 넣기 위해 L이 공을 집어들었다.안축으로 강하게.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안축 하이 서브로 기계과 수바라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브리시브 실수도 연거푸 나왔고 리시브가 되어도 제대로 세타쪽으로 보내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세타는 제대로 올려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은 전기과 쪽으로 계속 넘어오게 되었고 L은 이리저리 자신의 주특기인 정확한 안축공격으로 코너코너를 공략했다. 그리고 결정적일떄마다 왼쪽의 상대공격수 방향으로 강하게 스매싱해 득점을 올렸다. 한두번 수비실수가 생기자 상대공격수는 움츠려 들기 시작했다. 연거푸 수비를 실수 하자 공격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넘어차기는 실수하기 시작했고 가끔 안축으로 밀어차기를 했으나 강도가 약한 평범한 넘겨주기 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기계과 선수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이제 강해보였다. 더 단단해진 리시브 정교해진 토스 강한 공격력 기계과선수들의 몸이 얼기 시작했다. 공격하기위한 셋팅자체를 만들지 못했다. 겨우 만들어봤자 넘어차기 실수가 나왔고 안축도 별 효과를 못봤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전기과L의 마지막 발등공격이 화려하게 들어갔다. 족구대회장으로 열리는 테니스장의 울타리 상단을 맞추는 강력한 발등찍어차기가 나왔다. 평소에는 세팅수준이나 게임수준이 이런공격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여기 체육대회 결승에서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수비나 토스의 수준이 올라가고 공격수L의 집중력이 발휘되다 보니 가끔 한두번 해보았던 발등찍어차기가 중요한 싯점에서 터져버린것이다. 상대는 그야말로 거기서 무너졌다. 2세트를 완전히 압승하고 나니 3세트는 말할것도 없이 전기과의 몫이었다. 한번 몸이 풀리니 L은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가끔 상대의 넘어차기 시도가 계속 되었지만 이미 우리 수비수는 벌써 기량이 많이 늘어난 상태이다. 몇번 받아본 넘어차기의 로빙볼은 이제 쉽게 처리되었다. 위력을 발휘할수 없었다. 그리고나선 L의 강력한 안축차기 코너 이곳저곳에 들어가면 기계과는 당할수가 없었다. 3세트 중반 이미 승패는 가려진것과 같았다. 거기에 L의 페인트까지 완벽했다. 전기과가 완벽히 승리했다.
마지막 득점과 함께 전기과 선수들과 응원단 모두가 환호했다. 그야말로 대역전에 의한 완벽한 승리의 자축과 체육대회 종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모두가 열렬히 선수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자신은 있었지만 막상 결승에서 이렇게 어렵게 이길줄 몰랐던 L도 적잖이 흥분을 느꼈다. 세상 쉬운 승리는 없구나. 승리와 함께 친구들과 후배들과 그렇게 L은 4학년의 마지막체육대회에서 화려한 우승으로 학창시절의 한 컷을 그렸다. 체육대회의 푸른 5월의 하늘은 맑디 맑았다.
"야~ 너 졸업하구 족구선수해라~"
뒤풀이 하러가는 중에 친구놈 하나가 L에게 건넨다.
"치~ 족구선수가 어딨냐.."
"없나?..."
"없어 임마...족구로는 먹고살길 없어...취직해서 열심히 돈벌어야지..."
그도 친구도 아쉬워한다. 자신들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도 모르지만 그 우물안에서는 가끔 그런꿈도 꾼 것이다. 족구도 다른 많은사람들이 환호하는 정식 체육종목이 되고 저변이 확대되어 잘하는 사람은 족구로 살아갈수 있는날이 오기를 희미하게 생각하기도 하는것이다. 그러나 그런것은 한낱 연기같은 아주 작은 희망일뿐 당장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족구는 그저 옆에 있는 놈이었다. 온몸으로 받기에는 시대적 상황과 L의 현실에게서는 맞지않았다. 그저 옆에 있는 것이다.